[강준모의 詩로 세상열기] '분리수거를 하면서' (강준모)

노익희 선임기자 | 기사입력 2021/01/11 [19:01]

[강준모의 詩로 세상열기] '분리수거를 하면서' (강준모)

노익희 선임기자 | 입력 : 2021/01/11 [19:01]

▲ 아픈 지구는 아주 크고 깊은 울음을 도처에서 보이고 있다. "똥이 되지 못한 미완의 음식"과 "재활용 안된 프라스틱의 죽음"으로 인해 크게 아퍼하고 있다. 이렇게 아픈 지구는 이제 우리 문명을 지구의 방식으로 분리수거할 지도 모른다. (본문 中에서)

 

- 분리수거를 하면서 ( 강준모)

 

활용품을 푸대에 분리해서 버린다

 

페트병을 찌그러뜨려 공기는 회수한다
희망을 마셨던 소주병을 버린다
똥이 되지 못한 미완의 음식을 버린다
A4용지에 쓰다 망친 슬픔을 버린다
그런데 오랫동안 몸의 그림자였던 옷이 나를 버린다
재활용 안된 죽음이 삶을 버리고 있는 중이다
언젠간 지구가 나를 버릴 때가 있을 것이다

 

지하실의 어둠이 빛을 버리고 있는 오후이다


 (강준모 시집 <오래된 습관 > 中에서)

 

- 작시(作詩) 노트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음식과 물품 배달은 폭증한다. 배달까지는 좋은데 배달 포장 대부분은 프라스틱이다. 요즘은 거의 이틀이 멀다하고 분리수거를 하러 아파트 지하1층에 내려간다. 분리수거 쓰레기들은 연일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지구는 계속 프라스틱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들은 다시 재활용된다고는 하나, 재활용되지 못하고 그대로 죽음의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이 많다. 그 비중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자연은 순환을 기본 원리로 하고 있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 나뭇잎을 키워 열매를 맺는다. 맺고 키운 것들은 바닥에 떨어져 썩는다. 썩은 것들은 다시 나무의 꽃과 나뭇잎이 되는 것이다. 이런 순환의 원리는 지구의 역사이자 생명이다. 이런 순환의 흐름이 점차 끊어지면 지구의 혈관 시스템은 고장나 지구는 고혈압과 당뇨로 병들어 갈 것이다. 
 
아픈 지구는 아주 크고 깊은 울음을 도처에서 보이고 있다. "똥이 되지 못한 미완의 음식"과 "재활용 안된 프라스틱의 죽음"으로 인해 크게 아퍼하고 있다. 이렇게 아픈 지구는 이제 우리 문명을 지구의 방식으로 분리수거할 지도 모른다. "지구가 나를 버릴 수도 있다"

 

"재활용 안된 죽음"은  결국 엔트로피(무질서) 증가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이로 인한 지구는 계속 아플 것이다. 이런 지구의 아픔과 울음은 코로나19라는, 또 다른 얼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 강준모 시인
1961년 서울 출생. 경희대학교 및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7년 [창작21] 신인상 등단. 시집 <오래된 습관> 공동작품집 <발톱을 깎다> <수상한 가족사> <드문드문 꽃> . 창작21작가회 사무국장. 현재 경희여자고등학교 국어 교사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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